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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안녕ㆍ우려’에 좌우되는 ‘총수 구속’ 팻말 시위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이범종 기자
2020-06-16 14:02:00

총수 법원 출석 때 ‘구속하라’ 팻말

100m 내 집회·시위금지 예외 허용

“예측성 떨어지는 기준…판례 쌓여야”

8일 오전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한 시민단체 회원이 앞면에 ‘이재용 구속’, 뒷면에 ‘이재용 사퇴’가 적힌 팻말을 들자, 법원 관계자가 “내려놓으라” 말하고 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 지난 8일 오전 서울 서초동 법원종합청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으러 입구에 들어서자, 시민단체 회원들이“이재용 구속”을 외치며 같은 내용의 팻말을 들었다. 법원 관계자들이 “내려놓으시라” 수차례 권고했지만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법원 앞 시위를 금지한 현행법에 예외조항이 생겼지만 적용 기준이 모호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시위가 사건에 영향 줄 ‘우려’가 없어야 하는데 당사자와 시위자 모두 일관된 시위 제지나 허용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9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일부 개정을 공포·시행했다. 집시법 11조는 법원과 헌법재판소 등 경계 지점 100m 이내 옥외집회나 시위를 금지해왔다. 헌법재판소가 2018년 7월 해당 조항에 위헌 결정을 내리자 20대 국회는 지난달 20일 마지막 본회의에서 예외 사유를 넣어 통과시켰다.

개정법은 “각급 법원, 헌법재판소 기능이나 안녕을 침해할 우려가 없다고 인정되는 때”에 집회·시위를 금지하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법관이나 재판관의 직무상 독립이나 구체적 사건 재판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없거나, 대규모 집회 또는 시위로 확산될 우려가 없는 경우다. 예외 조항은 2018년 12월 더불어민주당 유동수 의원, 2019년 1월 송갑석 의원, 7월 강창일 당시 의원 등이 대표발의했다.
 

지난달 20일 20대 국회가 마지막 본회의를 진행하는 모습. [사진=이범종 기자]

◆입법부도 ‘기준 불명확’ 우려

국회에선 개정안 속 ‘안녕’과 ‘우려’가 뜨거운 감자였다. 지난 4월 국회 법사위 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은 모호한 방식이 표현의 자유를 사전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같은 당 박주민 의원도 미국 연방 대법원 사례를 들어 ”정밀하게 정교하게 외과 수술을 하듯이 금지되는 행위를 명확하게 표현을 해서 그런 행위들만 제한을 해야 된다는 문구들을 계속 쓴다”고 거들었다. 우려나 안녕이라는 단어가 판례와 법령에 쓰이곤 하지만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때는 부적절하다는 주장이다.

이에 민갑룡 경찰청장은 우려라는 개념이 명확성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는 헌재 결정례가 있다며 반박했다. 헌법기관의 본질적 기능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예외를 폭넓게 인정하는 입법안이라는 반론이다.

우려가 명확성 원칙에 위반되는지에 대한 헌재 판단은 맥락에 따라 달랐다. 미성년자에게 음란성 또는 잔인성을 조장할 우려가 있는 만화 반포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면 처벌한 미성년자 보호법 조항은 2002년 위헌 결정이 났다. 사회통념상 정당하다고 볼 여지가 있는 부분도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어서다. 반면 2006년에는 농림부령이 정한대로 조사한 결과 재해발생이 우려되는 경우 채석을 금지하는 조항에 합헌 결정이 났다. 현지조사와 주민조사로 채석에 따른 재해 발생을 예측할 수 있어서다.

헌재는 집시법 위헌 결정 당시 “법원을 대상으로 한 집회라도 사법행정과 관련된 의사표시 전달을 목적으로 한 집회 등 법관의 독립이나 구체적 사건의 재판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없는 집회도 있다”고 판단했다. 집회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 가능성이 완화될 수 있도록 시위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취지다. 집시법 자체에 보완 규정이 많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서울법원종합청사. [사진=이범종 기자]

◆재판부 재량에 달린 안녕과 우려

법원이 청사 내외에서 시위를 막을 근거는 집시법 외에도 많다. 법원조직법, 법원보안관리대의 설치조직 및 분장사무 등에 관한 규칙, 법원보안관리대 운영에 관한 예규 등이다. 법원보안관리대는 법원조직법 55조에 따라 법원 청사 내 질서 문란행위를 제지한다. 각 규칙 5조와 예규 12조도 이를 뒷받침한다. 예규 2호는 질서 문란행위를 청사 출입자의 생명·신체·재산 등에 대한 위해행위로 정의한다.

이 때문에 피의자나 형사 피고인 입장에서 일관된 시위 제지나 허가를 기대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개정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11조 적용에 관해서는 관련 사건을 담당하는 개별 재판부에서 판단할 사항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각 사건 재판부가 안녕과 우려의 기준을 판단해 개별 적용해야 한다는 의미다.

법조계에선 모호한 예외 규정이 본래 입법 취지를 살리지 못할 가능성을 우려한다. 관련 소송이 반복되며 판례가 쌓여야 일관된 해석이 적용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다. 이충윤 법무법인 해율 변호사는 “해당 조항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은 전면 금지 조항이 헌법상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에 근거한다”며 “개정안처럼 원칙적 금지와 예외적 허용 조항은 이러한 취지에 반한다”고 분석했다.

이 변호사는 “개정안의 예외 또한 명백하지 않고 판단 여지가 있어 상당수의 판례가 축적되기 전까지는 집회 가부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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