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재판 중단 반년...구체화되는 ‘진지한 반성’

이범종 기자2020-06-01 12:12:22
삼성 준법위 4일 회의서 ‘구체적 방안’ 보고 연이은 검찰 소환...위기 속 기회 모색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중국 산시성 삼성전자 시안 반도체 사업장을 찾아 현장 점검하는 모습. [사진=삼성전자 제공]

[데일리동방]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약속이 하나둘 씩 실천으로 나타나고 있다. 뇌물죄 재판 중단이 장기화되면서 피고인의 반성을 보여줄 시간도 늘어나고 있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법위)는 4일 회의를 열고 계열사 관계자에게 이 부회장 발표문 관련 ‘구체적 실행 방안’을 보고 받는다. 이번 보고는 지난달 6일 이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문에 대한 후속조치다.

앞서 준법위는 3월 이 부회장과 삼성 계열사들에게 경영 승계 관련 준법 의무 위반과 노조 문제 등 재발 방지 약속을 요구했다. 이 부회장은 한 차례 기한을 연장하고 두 달만에 사과문을 발표했다. 다음날 준법위는 삼성 계열사에 △준법 의무 위반이 발생하지 않을 지속 가능 경영 체계 수립 △노동3권의 실효성 있는 보장 △시민사회 실질적 회복을 위한 실천 방안 등에 대한 구체적 실행 방안을 요청했다.

이번 준법위 회의 때 구체적 실행방안을 보고하는 계열사는 삼성전자다. 나머지 감시 대상 6개 계열사는 일정이 확정되지 않았다.

사과문 이후 구체적 실행으로 볼 수 있는 점은 지난달 29일 삼성 해고자 김용희씨 농성 마무리 합의다. 그는 1982년 삼성항공 창원 1공장에 입사해 경남지역 삼성노조 설립위원장 활동을 이유로 1995년 5월 해고됐다. 그는 지난해 6월부터 삼성 서초사옥 인근인 강남역 CCTV 철탑에서 350일 넘게 농성해왔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노조 문제로 상처 입은 이들에게 사과했다. 그는 무노조 경영 종식을 선언하고 노사관계 법령 준수와 노동3권 보장을 약속했다. 노사 화합과 상생, 건전한 노사문화 정착 노력도 공언했다.

뇌물죄 재판이 멈춘 지 반년이 지나면서 이 부회장은 ‘진지한 반성’을 보여줄 시간을 벌어왔다. 뇌물죄 감경 요소에는 진지한 반성이 포함된다. 그는 서울고법 형사1부 정준영 부장판사가 미국식 준법감시제도를 언급하자 준법위를 만들었다. 이 부회장 변호인은 특검이 정 부장판사의 편향성을 의심하며 재판관 기피신청을 한 뒤에도 준법위 활동은 양형 판단에 필요하다는 의견서를 냈다. 의견서 제출은 특검의 기피 신청 이전에 정 부장판사가 요구했다. 고법에서 기각된 재판장 기피신청은 특검의 재항고로 대법원이 심리하고 있다.

그 사이 삼성은 나름의 성과를 내 왔다. 2월 28일 삼성전자 등 계열사 17곳은 2013년 옛 미래전략실이 시민단체 10곳을 ‘불온단체’로 규정하고 후원 내역을 동의 없이 열람한 점을 사과했다. 준법위 첫 성과다. 이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도 준법위 권고를 따랐다.

삼성이 한 걸음씩 성과를 내고 있지만 부담도 한걸음씩 다가온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달 26일과 29일 이 부회장을 불러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을 조사했다. 검찰은 두 회사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변경이 이 부회장의 안정적 경영권 승계를 위한 과정이었다고 의심한다. 이에 합병·승계 중 불법 의심 행위를 기획·실행한 주체를 파악하고 그를 정점으로 둔 그룹 수뇌부가 어디까지 보고받고 지시했는지 추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영은 경영대로 큰 결정이 이어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경기도 평택캠퍼스 2라인에 낸드 플래시 생산라인 투자를 단행했다. 제품 양산은 2021년 하반기 예정이다. 이번 투자는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등 4차 산업혁명 도래와 5세대 이동통신(5G) 보급에 따른 중장기 수요 대응과 메모리 초격차를 위한 결정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18일 중국 당국의 플래시 메모리칩 협력 강화 약속도 받아냈다. 21일에는 평택 캠퍼스 내 EUV(극자외선) 파운드리 생산시설 설립 계획을 밝혔다. 지난해 4월 발표한 ‘반도체 비전 2030’ 후속 조치다.

삼성은 위기 속에 차분히 숙제를 제출하고 있다. 이번주 과제는 구체적 실행 방안의 깊이와 진정성이다. 삼성은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인도적 차원’에서 김용희씨와 대화 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 노조 문제 해결과 관련해 아쉬워하는 대목이다. 이 때문에 노조 설립 관련 해고자 후속조치 여부도 이목을 끈다.